OUR MISSION · 우리의 사명
BIBLY 바이블 인사이트는, 평신도가 누구의 해석에도 휘둘리지 않고 성경을 스스로 읽어내도록 돕는 성경·종말론 전문 온라인 아카데미입니다.
WHY WE EXIST
우리는 한국 교회를 사랑합니다. 수많은 성도의 눈물과 헌신 위에 세워진 이 교회가, 다시 세상의 빛이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도리어 더 어두워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파벌 싸움과 갈라치기, 복만 비는 기복 신앙, 무엇이든 옳다는 종교 다원주의, 그리고 본질을 잃은 채 극단과 미혹에 휩쓸려 가는 모습들. —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 가는 것을 보며, 오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럼에도 예배당을 떠나지 못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수많은 영혼이었습니다. 진리에 목말라하면서도 어디서도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한 채, 조용히 영혼이 메말라 가는 분들. 그 갈증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습니다.
멀리 미국 신학대학원에서 뼈를 깎듯 공부하며 다시 확인한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 우리는 성경으로,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화려한 명성이나 누군가의 권위가 아니라, 누구의 해석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성경을 읽고 분별하는 성도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길을 시작했습니다. 무너진 강단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의 한국 교회를 다시 깨우기 위해. 한 사람의 강단에 기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씀 앞에 서는 성도를 함께 세우기 위해. 작은 걸음이지만, 같은 마음을 품은 당신과 함께라면 우리는 분명히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 함께, 이 길을 걸어가 주시겠습니까?
MISSION STATEMENT
📖 진리를 쉽게
대학원 신학을 누구나 이해할 언어로 풀어냅니다.
🧭 분별을 깊이
두려움과 음모론이 아닌, 본문과 검증된 신학으로.
🌱 세대를 잇게
다음 세대에 물려줄 진리의 기준을 함께 세웁니다.
OUR VISION · 지향점
01
열린 신학원
담장 안의 신학을 담장 밖으로. 누구나 무료·저비용으로 깊이 있는 신학을 배우는 열린 배움터를 지향합니다.
02
분별하는 공동체
종말·세계관·자녀교육을 성경으로 함께 분별하고, 서로의 질문에 답하며 자라는 학습 공동체를 세웁니다.
03
평신도 신학자
강단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본문 앞에 서는 '평신도 신학자'들의 네트워크로 확장되기를 꿈꿉니다.
CORE VALUES · 추구하는 가치
흔들리는 시대에도, 이 다섯 가지만큼은 양보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사람의 권위나 전통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이 모든 판단의 최종 기준입니다.
분별
Discernment
유행과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고, 검증된 신학의 눈으로 시대를 읽습니다.
쉬움
Accessibility
깊이를 덜어내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냅니다.
정직
Integrity
과장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후원과 참여는 오직 자발적입니다.
세대 계승
Legacy
배움이 나에게서 멈추지 않고, 가정과 교회, 그리고 다음 세대로 흘러가게 합니다.
WHY “BIBLY”
BIBLY 는 Bible(성경)에 Daily(날마다)를 더한 이름 —
날마다 말씀 곁에서, 스스로 읽는 삶을 뜻합니다.
B
Bible
성경 위에
I
Insight
시대 분별
B
Believe
믿음 세움
L
Light
빛 되어
Y
Yourself
스스로
읽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경 위에 · 시대를 분별하며 · 믿음으로 굳게 · 빛이 되어 · 스스로 서는 한 사람.
INSTRUCTOR · 강사 소개
강단을 넘어, 성도가 스스로 성경을 읽는 눈을 길러온 사람
오광일 · BIBLY 대표강사
신학과 인문학, 그리고 교육학을 공부하며 깨달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신앙의 위기는 늘 '스스로 성경을 읽지 못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역은 강단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성경을 펴고 시대를 분별하는 눈을 기르도록 돕는 데 집중합니다. 어려운 신학을 쉬운 언어로, 종말의 두려움을 분별의 확신으로 바꾸어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이든 편하게 물어보세요. 정답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함께 성경을 읽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TESTIMONY · 대표강사의 간증
대표강사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걷는지 —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 살, 아직 아버지의 얼굴조차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던 나이에 저는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가난과 슬픔만 남은 자리에서, 홀로 되신 어머니는 ‘이 아들을 지켜만 주신다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습니다’ 서원하며 눈물로 저를 키우셨습니다. 죽음과 가난은, 제 삶의 가장 이른 기억의 자리에 먼저 와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시골의 작은 교회는 온 세상이었습니다. 그곳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도서관이었고, 함께 뛰노는 체육관이었습니다. 마음이 시릴 때면 저는 텅 빈 예배당에 홀로 앉아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아버지 없는 설움과 가난을 눈물로 아뢰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늘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느끼게 해 준, 따뜻한 품과 같은 공동체였습니다.
그 교회의 품에서 저는 자연스레 강단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청소년이 되어 가며, 저는 교회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 묵은 구습과 파당, 시기와 질투, 등 뒤의 수군거림… 거룩해 보이던 공동체에도 짙은 그늘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제 마음엔 한 가지 진솔한 물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는, 참 사역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질문은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서원이 늘 마음에 빚으로 남았지만, 단지 그 빚이 미안해서 목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강단에서 ‘목사님, 목사님’ 대접받으며 위세를 누리려는 마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이 시대의 참된 사역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저는 목회의 꿈을 잠시 마음 깊이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고, 성실히 일했으며, 지혜롭고 아름다운 지금의 아내를 만나 두 딸의 아버지로, 평범한 직장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마음 한편에 오랜 물음을 품고 살아가던 어느 날, 저를 믿음으로 키워 주신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장례의 자리에서, 읽어 내려가던 한 구절이 천둥소리처럼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1:25–26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묻기 시작한 그 질문의 답이, 바로 그 자리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으로 제게 임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부활이요 생명되신 그분이 모든 답이라는 것을 저는 그제야 온몸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 사람들의 부활이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남은 생을 온전히 바치겠다고.
저에게는 십오 년 가까이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다해 섬겨 온 교회가 있었습니다. 청춘과 눈물을 쏟아부어 사랑한 공동체였습니다. 그 사랑이 저를 신학의 길로까지 이끌어, 더 바르게 섬기고 싶은 마음으로 멀리 미국의 신학대학원에서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깊이 파고들수록 분명해진 것은 단 하나, 모든 것의 중심에 오직 성경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을 공부하던 바로 그 시간에, 사랑하던 그 교회가 본질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자리는 점점 사라지는데, 세상의 한 진영을 위한 집회에는 열심을 다해 참석을 독려했습니다. 성도들의 단톡방은 복음이 아니라 온통 정치 기사로 채워져 갔습니다. 복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치가 들어선 것입니다.
저는 더는 침묵할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 선포라는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나라가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가 특정 정치 세력에 기대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또 하나의 우상숭배입니다.” 미워서가 아니라, 너무도 사랑하기에 드린 쓴소리였습니다.
그 한마디의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신학교 졸업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저는 이상한 명목으로 십오 년을 바친 그 공동체의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처음부터 너는 우리와 결이 맞지 않았다”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러나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십오 년을 형제요 자매라 부르며 함께 울고 웃던 믿음의 지체들이, 하루아침에 저를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벌레라도 보듯 외면했습니다. 도대체 교회란 무엇이며 믿음이란 무엇인가 — 저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밤마다 엎드려 울며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저뿐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마저 깊은 상처를 입어, 한동안 공황의 그늘 아래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광야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권위도, 어떤 조직도, 십오 년의 정(情)도 끝내 저를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메마른 광야에서, 하나님은 가장 귀한 것을 제게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스스로 성경을 읽고 그 말씀 위에 선 사람만이, 어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깊은 어둠의 끝에서 드린 금식 기도 중에,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를 향한 소명을 제 가슴에 부어 주셨습니다. 화려한 강단도, 큰 조직도 없이 — 이 사역은 그렇게 눈물로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이 마지막 세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성도라도, 누구의 해석에도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말씀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결코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광야에서 저를 붙드신, 부활이요 생명되신 그분께 빚진 자일 뿐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제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 높아지시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기도합니다. 혹 같은 아픔을 아는 분이라면, 혹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사모하는 분이라면 — 이 길을 함께 걸어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도로 함께해 주시고, 흔들리지 않는 성도를 세우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 가는 이 여정에 당신의 동행을 청합니다.
— 광야에서 주님께 붙들린 자, 오광일 드림
YOU BELONG HERE
단순한 시청자가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됩니다. 이곳의 멤버에게는 네 가지가 주어집니다.
🤝
혼자 끙끙대던 질문을 함께 묻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커뮤니티와 질의응답에서,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 마음을 나눕니다.
🎁
강의 평생 소장, 대학원 수준의 강의 노트(PDF), 자료실, 그리고 질의응답에서 강사가 직접 답하는 답변까지. 새 강의 소식도 가장 먼저 받습니다.
🏅
시청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읽고 분별하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내 강의실에서 학습의 자취와 완강의 발자국이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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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정과 교회, 다음 세대에 진리를 전하는 통로가 되는 일 — 그 사명에 함께 참여합니다.